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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번스타인이 놓친 것. 당신도 삶에서 놓칠 수 있는 것.




이 시대 특출한 재즈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피터 번스타인이 지난주에 새 앨범 <What Comes Next>을 냈습니다. 텅 빈 맨해튼 거리에 비장한 모습으로 기타를 들고 있는 앨범 자켓이 인상적입니다. 피터 번스타인 쿼텟이 지난 8월 14일과 15일 맨해튼 북부의 스모키 재즈 클럽에서 녹음한 라이브 앨범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이브스트림 실황 앨범입니다. 청중이 없는 상황에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연주했지요. 스모키 재즈 클럽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 라이브스트림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코비드-19를 헤치고 ‘뉴 노멀’로 가는 길목에서 앨범 타이틀을 잘 지었습니다. 우리 모두 궁금해하는 질문을 달았으니까요. “다음은 뭐죠?” (What Comes Next?)

그런데, 피터 번스타인은 앨범 보도자료에서 앨범 타이틀에 이런 의미를 부여합니다.

“What Comes Next 라는 의문문에서 전 물음표를 뺐어요. 물음표가 없으면 질문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어떤 생각과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여줄 수 있죠.” - 피터 번스타인

따라서 앨범 타이틀은 “다음은 뭐죠?”가 아니라 “다음은 뭐죠.”가 됐습니다.


물음표 하나를 뺐을 뿐인데 저는 왜 애석할까요?


연주자로서는 다음엔 뭘 들려줘야 하지? 어떤 곡을 써야 하지?

우리의 삶도 다음은 뭘 해야 하지? 다음엔 누구를 만나게 되지? 다음엔 얼마만큼 행복할 수 있게 되지? 다음엔 어떤 정권이 들어서게 되지? 인생은 온갖 질문의 연속인데 말이지요.


이렇게 물음표에서 물음표로 이어지는 삶, 즉 기표(signifiant)에서 기표로 이어지면서 삶, 우리의 욕망도 그 기표의 흐름을 타고 이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욕망은 상징계 기표를 타고 흐르는 것이며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항상 “다른 것을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피터 번스타인은 물음표를 없앰으로써 기표의 흐름을 가로막았습니다. 기표가 정지해버렸어요. 닫힌 문장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번스타인은 코비드-19 상황에서 불안의 질문들은 봉합해 버린거에요. 번스타인은 ‘이렇게 봉합한 내부에서 쾌락을 찾아보지 그래?’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번스타인의 앨범은 아름답고 소프트하고 과잉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란트 그린(1935-1979)의 연주를 듣는 것만 같아요.

피터 번스타인의 의도는 멋지지만, 이 점은 지적하고 싶네요.

우리는 이미 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때만 질문을 합니다. 그 답은 환상과 연결되어 있지요. 모든 질문은 대답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질문은 범위를 제한합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알아낼 것인지를 안다고 믿을 때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질문이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궁금하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질문은 정보를 얻기 위한 차원이라기보다 욕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증상이 됩니다. 증상은 질문의 살아있는 요소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결핍의 존재입니다. 결핍의 존재만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번스타인의 ‘물음표’가 없는 내부도 또 다른 환상입니다. 그러나 번스타인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물음표를 빼었어도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그 문장이 질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음표를 빼지 마세요. 답을 알고 있어도 질문을 하세요. 기표를 순환하게 하세요. 예기치 못한 대답이든, 알쏭달쏭한 대답이든, 대답이 없는 대답이든, 그 대답의 형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음표를 뺀 물음의 타이틀을 가진 번스타인의 새 앨범은 다분히 증상적입니다.

이 야릇한 문장의 음악에서 졸졸 새어 나오는 주이상스의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까?

다음은 뭐죠? 양수연 (재즈 비평가)

Peter Bernstein(guiar), Sullivan Fortner(piano), Peter Washington(bass), Joe Farnsworth(drums) "Empty Streets" From What Comes Next, Smoky Sessions Records, 2020



 

Reference:

Jacques Lacan, Seminar IV (1956 - 1957), Seminar XIII (1965-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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