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V–I는 재즈에서 가장 기본적인 코드 진행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이 진행은 흔히 “기초” 혹은 “입문”의 언어로 설명된다. 그러나 기본이라는 말은 종종 그 구조를 가려버린다. ii–V–I는 단순해서 기본이 된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한 구조이기 때문에 기본이 되었다.
기능 화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진행은 명확하다. ii는 predominant로서 움직임을 예비하고, V는 dominant로서 긴장을 축적하며, I는 tonic으로서 해결을 제공한다. 이 설명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재즈에서 이 진행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이 교과서적 도식보다 훨씬 미묘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해결로 간주되는 I의 성격이다.
재즈에서 I는 거의 항상 메이저 세븐스, 식스, 혹은 다양한 텐션을 포함한 상태로 나타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순수한 삼화음의 토닉은 너무 완결적이기 때문이다. maj7이 추가되는 순간, 토닉은 안정되지만 동시에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즉, 해결은 이루어지지만 종지는 의도적으로 유보된다. 이 점은 가이드 톤, 즉 각 코드의 3도와 7도를 따라가 보면 더 분명해진다. 예컨대 C 메이저의 ii–V–I에서 Dm7의 7도(C)는 G7의 3도(B)로 반음 하행하고, G7의 7도(F)는 Cmaj7의 3도(E)로 해결된다. 이 반음 이동은 강력한 필연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Cmaj7의 7도(B)는 여전히 남아 있어, 완전한 안정 대신 다음 진행을 예비하는 잔여 긴장을 유지한다. 라캉식으로 말하면, 여기서 토닉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이 잠시 고정되는 자리다. ii는 결핍이 막 인식되기 시작한 상태이고, V는 그 결핍이 상징적 질서 안에서 최대화된 지점이다. I는 그 결핍이 제거된 결과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형태로 재배치된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ii–V–I는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이 구조는 실제 연주 관행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I에서 프레이즈를 명확히 종결하지 않는다. V에서 시작된 선율은 I 위에서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 다음 ii로 이어진다. 화성적으로는 해결되었지만, 선율적으로는 해결이 지연된다. 이 지연이야말로 재즈 언어의 핵심이다. 만약 모든 프레이즈가 I에서 완전히 닫힌다면, 음악은 곧 설명처럼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마이너 키의 ii–V–i에서는 이 성격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마이너에서 V는 종종 얼터드 텐션(♭9, ♯9, ♭13)을 포함해 과잉된 긴장을 생성한다. 이 긴장은 i로 해결되지만, i 역시 종종 maj7이나 모달한 색채를 띠며 완전한 종지를 거부한다. 긴장은 해소되지만, 지속 가능성을 위해 다시 열려야 한다는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다. 그래서 ii–V–I를 반복해서 연습할수록 이 진행은 점점 덜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어디로 가는지는 분명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또렷해진다. 재즈의 언어는 이 점에서 솔직하다.
이 점에서 Bill Evans Trio의 〈Autumn Leaves〉(Portrait in Jazz, 1959녹음)는 ii–V–I가 어떻게 “끝나지 않는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가장 정교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곡은 흔히 ii–V–I의 교과서로 소개되지만, 에반스의 연주는 교과서적 해결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같은 진행을 반복하면서, 매번 해결의 성격을 미세하게 바꾼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지가 아니라, 도착이 어떻게 지연되는가다.
도착하지 않기 위해 도착하는 구조
Autumn Leaves의 형식은 명확하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며 ii–V–I가 반복된다. 그러나 Evans의 보이싱은 토닉의 루트를 강조하지 않는다. 루트는 베이스(LaFaro)에게 맡기고, 피아노는 3도, 7도, 그리고 텐션 위에서 머문다. 그 결과 I는 기능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청감적으로는 항상 약간 미끄러진다. 안정은 느껴지지만, 안착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이드 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략은 매우 일관적이다. V7의 7도가 I의 3도로 해결되는 최소한의 움직임은 유지되지만, 그 위에 놓인 maj7, 9, 13 같은 음들이 종지를 흐린다. 해결은 제거되지 않고, 최소 조건으로만 충족된다. 나머지는 다음 ii를 이미 예비한다. 이때 음악은 종결을 제공하지 않고, 지속을 선택한다. 라캉식으로 말하면, Evans가 만들어내는 토닉은 욕망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이 “충족된 것처럼 보이도록” 조직된 자리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 이상 불안정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곡은 다시 ii로 돌아간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충족된 것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계속 작동한다.
Autumn Leaves에서 이 구조는 더욱 분명해진다. 에반스의 솔로는 I에서 멈추지 않는다. 프레이즈는 종종 I 위에서 끝나는 대신, 다음 ii의 음형을 미리 호출한다. 화성적으로는 해결되었지만, 선율적으로는 해결을 유예하는 방식이다. 모션(Motian)의 드러머십과 라파로의 유동적인 베이스 라인은 이 유예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리듬 섹션 전체가 종지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마이너 ii–V–i 구간에서는 이 전략이 더욱 노골적이다. 얼터드된 V는 강한 긴장을 생성하지만, i는 그 긴장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는다. 에반스는 마이너 토닉에서도 maj7이나 모달한 색채를 유지하며, 종지를 닫지 않는다. 라캉의 용어를 빌리면, 쾌락은 제거되지 않고 조절 가능한 형태로 배치된다. 너무 완전한 해소는 곡을 끝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utumn Leaves는 “편안한 발라드”로만 듣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곡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반복은 안정이 아니라, 차이를 생산한다. 라캉이 말했듯, 욕망은 같은 대상을 반복하지만, 같은 만족을 제공하지 않는다. 에반스의 연주는 바로 이 구조를 음악적으로 구현한다.
결국 ii–V–I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집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장치다. 빌 에반스는 이 장치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다뤘다. 그는 해결을 제거하지 않았고, 대신 해결이 어떻게 지연되고 관리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Autumn Leaves는 지금도 반복해서 연주된다. 이 곡이 “잘 쓰인 곡”이기 때문이 아니라, 끝날 수 없는 구조를 정확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해결은 필요하다. 그러나 완결은 오히려 음악을 멈춘다. ii–V–I가 여전히 재즈의 기본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진행은 끝내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계속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Listening note
Bill Evans Trio, Portrait in Jazz (Riverside, 1959)
Track: “Autumn Leav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