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비트 매거진(DownBeat)의 재즈 비평가 애머 칼리아(Ammar Kalia)는 Fieldwork이 지난 9월 발표한Thereupon을 “커카포너스 사운드(cacophonous sound)”로 규정한다. 이는 단순히 시끄럽거나 혼란스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거친 불협음이 집적(集積)된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 앨범의 사운드는 무질서가 아니라 정밀하게 조율된 불안정성이다.
이 음악은 실제로 붕괴 직전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호출하면서도, 끝내 붕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장자리에서 구조가 발생한다. 오프닝 트랙 “Propaganda”에서 타이샨 소리(Tyshawn Sorey)의 프랙탈적 브레이크비트(fractal breakbeats)는 시간의 연속성을 해체한다. 즉, 박자가 단순히 빠르거나 복잡하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프랙탈”은 리듬이 작게 쪼개질수록 더 작은 단위에서도 비슷한 분절 방식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리킨다. 즉, 큰 박 안에서 리듬이 나뉘고(분할), 그 나뉜 조각이 다시 더 잘게 쪼개지면서(재분할) 시간이 한 줄로 흐르지 않고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브레이크비트는 바로 그 분절을 수행하는 드럼 어법으로, 연속적인 스윙이나 4비트 드라이브처럼 매끈한 진행을 제공하기보다 끊어지고 튀는 추진력을 만든다. 따라서 이 해체는 무정부적이지 않다. 리듬은 끊임없이 갈라지지만, 앵커링되는 그루브가 청취자를 다시 끌어당긴다.
스티브 레먼(Steve Lehman)의 비밥 계열 색소폰 라인은 의미의 파편처럼 튀어나오고, 비제이 아이어(Vijay Iyer)의 코드 스탭은 문장부호처럼 음악의 구조를 찍어 나간다.
이 앨범의 음악적 핵심은 멜로디나 솔로의 전면화가 아니라, 리듬·밀도·질감이 어떻게 상호 조직되는가에 있다. 즉, 이 음악은 ‘무엇을 연주하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시간을 구성하는가’에 관한 탐구다.
Thereupon의 시간 설계자, 타이샨 소리 (Tyshawn Sorey)
타이샨 소리는 현대 재즈에서 가장 개념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드러머 중 한 명이다. 그는 드러머이자 작곡가, 지휘자로 활동하며 재즈와 현대음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의 드럼은 단순한 타임키핑을 거부한다. 대신 프랙탈적 브레이크비트, 미세한 악센트 이동, 톰과 심벌의 레이어링을 통해 시간을 쪼개고 재배치 한다.
“Propaganda”에서 그는 직선적인 추진력 대신, 갈라지고 분기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만든다. 타이틀곡 “Thereupon”에서는 느린 템포 속에서도 크레센도로 향하는 형식적 곡선을 또렷하게 그려낸다. 그의 연주는 반응이 아니라 방향 설정에 가깝다. 다른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열어두면서도, 전체 구조가 이탈하지 않도록 경계를 유지한다.
Thereupon의 리듬적 화성 건축가, 비제이 아이어 (Vijay Iyer)
비제이 아이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사상가에 가까운 음악가다. 그의 음악은 리듬, 수학적 구조,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사유한다. 이번 앨범에서 아이어의 피아노는 화성 반주가 아니라 리듬화된 화성(rhythmized harmony)으로 기능하며, 앙상블의 공간을 분할한다.
단속적인 코드 스탭, 불균등한 악센트, 반복 패턴의 미묘한 변형은 리듬과 화성의 경계를 흐린다. “Astral”, “The Night Before”에서 그는 여백과 잔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밀도 트랙들과 대비되는 음향적 호흡을 제공한다. 아이어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구조적 지지대로 작동한다. 그의 강점은 무엇을 더하느냐보다 어디를 비워두느냐에 있다. 특히 로즈(Rhodes)의 사용은 앨범의 명상적 국면을 떠받치는 중요한 색채로 작용한다.
Thereupon의 음색과 긴장의 조율자, 스티브 레먼 (Steve Lehman)
스티브 레먼은 알토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스펙트럴 음악 이론(spectral music theory)과 재즈 즉흥을 결합한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앨범에서 그의 색소폰은 멜로디를 완결하기보다,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날카로운 음색, 빠른 도약, 극단적인 레지스터 사용은 앙상블 전체를 각성 상태로 끌어올리며, 음악이 안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압박한다. 레먼의 라인은 종종 해소를 거부한 채 남아 있으며, 그 미해결성 자체가 다음 상호작용을 촉발하는 동력이 된다.
Thereupon은 듣기 쉬운 앨범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음악의 난점은 난해함이 아니라 집중을 요구하는 방식에 있다. Fieldwork는 혼돈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혼돈 직전의 상태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기술과 신뢰를 보여준다. 타이샨 소리가 시간을 설계하고, 비제이 아이어가 공간을 분할하며, 스티브 레먼이 긴장을 조율하는 이 삼각 구도는 어느 한 축도 무너지지 않을 때만 성립한다.
다운비트 매거진이 말한 커카포너스 사운드(cacophonous sound)는 이 앨범의 표면일 것이다. 그 이면에는 고도로 조직된 합의와 청취의 윤리가 있다. Thereupon은 자유 즉흥의 방종도, 현대음악의 추상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끝까지 듣는 세 연주자가 만들어낸 시간의 구조물이다. 이 앨범은 묻는다.
얼마나 복잡한 소리를 견딜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양수연)
References
DownBeat Magazine, December 2025
Ammar Kalia, review of Fieldwork – Thereupon
Pi Recordings Thereupon album page
https://pirecordings.com
Steve Lehman 공식 사이트
https://www.stevelehman.com
Vijay Iyer 공식 사이트
https://vijayiyer.com
Tyshawn Sorey 공식 사이트
https://tyshawnsore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