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Listening Jazz #03 서정의 규율. Together에서 즉흥의 지점들
Chet Baker & Paul Desmond-Together: The Complete Studio Recordings
Album: Together: The Complete Studio Recordings
Artist: Chet Baker (trumpet, vocal) & Paul Desmond (alto sax)
Type: Compilation (joint studio recordings)
Release (Compilation): early 1990s (commonly listed 1992/1993)
Label: Epic / Sony (various CD issues) Spotify
Duration: ~56 minutes
Core Personnel (across sessions):
Chet Baker, Paul Desmond + Jim Hall, Bob James, Kenny Barron, Roland Hanna, Ron Carter, Steve Gadd, Tony Williams (session-dependent)
Recording Context (three source worlds):
Van Gelder Studio, Englewood Cliffs, NJ — 1974 (Chet Baker/CTI sessions) Jazz Disco
Van Gelder Studio, Englewood Cliffs, NJ — April 1975 (Jim Hall – Concierto) Jazz Disco
Sound Ideas Studio, NYC — Feb/May 1977 (You Can’t Go Home Again sessions, Horizon/Verve lineage)
1) 앨범에 대해 -계획된 듀오 앨범이 아니라, 70년대의 세 장면을 한 장으로
Together는 흔히 제목 때문에 “둘이 스튜디오에서 듀오 앨범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Chet–Desmond가 함께 등장했던 스튜디오 녹음들(1974–1977)을 모아 한 장으로 만든 컴필레이션 성격이다. ‘탄생’은 작곡이나 콘셉트 기획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세션들의 교집합이 ‘Chet + Desmond’라는 이름으로 다시 읽히면서 성립합니다. Doug Payne의 CTI 관련 정리에서도, 이 컴필레이션이 여러 원 출처(CTI의 She Was Too Good To Me, Horizon/Verve 계열 You Can’t Go Home Again 등)에서 트랙을 가져와 구성된 형태임을 명시한다.
이 점이 DL#03에 유리하다. “한 번에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시간차가 있는 기록들이 ‘한 장의 청취 경험’으로 재편집될 때 생기는 의미의 층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가볍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운드는 부드럽고, 문장(프레이즈)은 단정하며, 청취자는 큰 충격 없이 곡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딥 리스닝의 관점에서 이 음반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음악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데도, 청취자의 자세를 바꾸게 만드는가. 왜 폭발이 없는데도, 듣는 중간에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가.
이 앨범에서 ‘깊게 듣기’는 몰입의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해상도를 다시 올리는 작업에 가깝다. 스피커 볼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 귀가 자동으로 하는 “요약” 기능을 잠시 중단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부드러운 음악을 배경으로 돌려놓는다. 일은 계속하고, 마음은 흘려 보내며, 음악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해 주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렇게 사용될 때조차 이상하게 손에 잡힌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연주들은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분위기가 생겨나려는 순간을 정확히 통제한다. 감정이 커지려는 찰나에 한 박 늦춰 놓고, 음악이 ‘설명’으로 넘어가려는 순간에 한 음을 덜어낸다. 그 절제는 친절함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1) 두 사람의 “부드러움”은 같은 부드러움이 아니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는 선(라인)을 그릴 때, 먼저 공기를 만든다. 소리의 시작점이 매끈해서, 선은 ‘움직임’보다 ‘상태’에 가깝게 들린다. 그는 음표를 앞세우기보다, 음표가 떠 있을 공간을 먼저 확보한다. 반면 쳇 베이커의 트럼펫은 같은 부드러움 안에서도 결이 다르다. 베이커의 음은 흔히 “허약하다”거나 “낭만적이다”로 요약되지만, 딥 리스닝에서는 다른 면이 보인다. 그의 음은 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강해지지 않기로 결정한 음에 가깝다. 음의 중심을 밀어붙이는 대신, 음이 막 생겨났다 사라지는 경계에 머문다. 그 경계는 감상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과 호흡의 문제다. 그는 트럼펫으로 말하되, 문장 끝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 절제는 “감정을 숨긴다”가 아니라, 감정이 말이 되는 순간을 경계한다.
이 둘이 만나면, 음악은 자연히 안전한 곳으로 흘러갈 수 있다. ‘아, 좋은 재즈’라는 익숙한 범주로 귀가 자동 분류를 완료할 수 있다. 그런데 앨범을 조금만 깊게 들으면, 이 자동 분류가 흔들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드는 서정은 흔히 우리가 기대하는 서정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서정이 “표현의 확장”이라면, 이 앨범의 서정은 표현을 확장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는지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여기서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니라 규율의 부산물이다.
2) 리듬 섹션은 ‘동반자’가 아니라 ‘규칙’이다
이 앨범을 가볍게 만드는 가장 흔한 오해는, 리듬 섹션을 배경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은 흔히 ‘깔아주는 역할’로 요약되지만, 실제로는 이 음반의 긴장과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다. 특히 딥 리스닝에서는, 드럼이 무엇을 “치느냐”보다 ‘무엇을 ‘치지 않느냐’가 더 크게 들린다. 스윙은 계속되지만, 그 스윙의 중심은 과시되지 않는다. 베이스는 진행을 안내하지만, ‘여기서 감정을 키워라’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때로 솔로이스트보다 더 먼저 감정의 과잉을 차단한다. 한 마디로, 이 앨범에서 리듬 섹션은 반주가 아니라 윤리적 장치다. “여기까지는 말해도 되지만, 그 이상은 말이 아니라 설명이 된다”는 경계선을 그어 준다.
이 지점에서 딥 리스닝은 매우 실용적인 훈련이 된다. “좋다”는 말로 쉽게 넘어가던 순간들이 “왜 좋지?”로 바뀌고, “부드럽다”는 형용사가 “어디에서 부드럽지?”로 분해된다. 이 음악은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편차로 사건을 만든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점점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진짜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DL#03의 중심이 될 수 있다.
3) 편곡과 현악은 ‘감정’이 아니라 ‘제약’으로 들려야 한다
일부 트랙에서 등장하는 스트링/편곡은 이 앨범을 가장 쉽게 “무드”로 만들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현악이 들어오면 음악은 곧장 영화적 질감으로 기울 수 있고, 청취자는 그 질감에 안착해버린다. 그런데 딥 리스닝에서는 이 현악을 ‘감정의 증폭’이 아니라 즉흥의 선택 폭을 제한하는 장치로 들어야 한다. 스트링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동시에 연주자에게 압력을 준다. “이 분위기를 깨지 말라”는 압력이 생긴다. 그래서 솔로이스트는 더 정교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즉흥이 자유롭기 때문에 멋진 게 아니라,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도 자유처럼 들리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해진다.
이 앨범의 딥 리스닝은 바로 그 제한을 듣는 일이다. 어디서 솔로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어디서 그 욕망을 스스로 접는지. 이 접힘이야말로, 이 앨범이 부드러움 안에 숨겨 놓은 핵심 장면들이다.
4) 마지막 긴 곡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청취의 테스트”다
앨범의 후반, 길게 이어지는 곡( Concierto De Aranjuez 등)은 흔히 클라이맥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DL#03에서는 이를 클라이맥스로 다루기보다, 앞의 곡들이 만들어 둔 규율이 확장되는지, 무너지는지를 점검하는 테스트로 다루는 편이 좋다. 앞부분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단 하나다. “더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말하지 않는 기술. 긴 곡은 그 기술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간이 길어지면 설명이 개입하기 쉽고, 감정이 스스로를 과장하기 쉽다. 따라서 마지막 트랙은 ‘큰 감동’이 아니라, 절제가 더 큰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여기서 딥 리스닝은 감상의 깊이가 아니라 윤리의 깊이가 된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나를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동을 요구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내가 감동을 원할 때 음악은 무엇을 하는가. 더 크게 울리는가, 더 빨리 달리는가, 더 어려워지는가. 이 앨범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내가 감동을 요구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한 음을 덜어내며 말한다. “그 요구가 정말 네 것인가?”
DL#03용 청취 포인트
어택(Attack): 음이 시작될 때 ‘정면으로 치는지’ ‘옆으로 스치는지’를 구분해 듣기-어택(Attack)은 음이 “처음 생겨나는 순간”의 질감이다. 어떤 음은 혀나 숨의 경계가 또렷하게 걸리며 ‘딱’ 하고 윤곽이 즉시 잡힌다(정면으로 치는 어택). 반대로 어떤 음은 공기 속에서 ‘스윽’ 스며들며 시작점이 부드럽게 번진다(옆으로 스치는 어택). 이 차이를 구분해 들으면 같은 멜로디라도 리듬의 체감, 서정의 온도, 문장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트럼펫이 솔로를 시작할 때 첫 음이 “딱” 하고 선명하게 찍히면 그건 정면 어택이다. 반대로 첫 음이 숨과 함께 “스윽” 들어오며 윤곽이 늦게 잡히면 옆으로 스치는 어택이에요.
프레이즈 끝 처리: 결론처럼 끝내는가, 여지를 남기는가: 프레이즈 끝 처리는 한 문장을 어디서, 어떤 표정으로 마침표 찍느냐의 문제다. 어떤 연주는 마지막 음을 또렷하게 정리해 “여기서 말이 끝났다”는 결론을 만든다(결론형 엔딩). 반대로 어떤 연주는 음을 살짝 덜어내거나 숨으로 흐리며, 다음 문장이 이어질 공간을 남긴다(여지형 엔딩). 이 차이를 듣고 나면, 같은 즉흥이라도 ‘선언’처럼 들리는지 ‘대화’처럼 들리는지 성격이 달라진다.
비브라토의 크기와 위치: 감정의 장식인가, 톤 유지의 기술인가: 비브라토는 음을 흔들어 감정을 “덧칠”하는 장식일 수도 있고, 소리를 길게 유지하면서 중심을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기술일 수도 있다. 흔들림이 크고 빠르면 감정의 제스처로 들리기 쉽고, 작고 미세하며 일정하면 톤의 안정 장치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또 중요한 것은 “언제” 비브라토가 시작되는가다. 음의 시작부터 흔들면 감정이 앞서고, 음을 충분히 세운 뒤 끝에서만 흔들면 음색을 유지하며 문장을 마무리하는 기능이 된다.
스윙의 체감 위치: 박 앞/정중앙/박 뒤 중 어디에 기대는지: 스윙은 리듬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같은 박을 어디에 두고 느끼는가의 문제다. 박 앞에 기대면 문장이 조금 더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고”, 박 뒤에 기대면 느슨해 보이지만 오히려 깊은 탄성이 생긴다. 정중앙은 균형이지만, 상황에 따라 “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딥 리스닝에서는 솔로가 흥분할수록 앞으로 가는지, 서정적일수록 뒤로 기대는지 같은 미세한 이동을 추적하면 된다.
드럼의 ‘비움’: 채우기보다 비워서 시간을 잡는 지점 찾기: 드럼의 핵심은 많이 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안 치면서도 시간이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가다. 어떤 순간에는 심벌을 더 얹지 않고 공간을 남겨서, 다른 악기의 호흡이 드러나게 한다. 그 비움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리듬의 중심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특히 스네어·킥·하이햇이 동시에 과잉이 되지 않게 조절하는 지점에서, 음악은 더 넓게 들리고 솔로는 더 또렷해진다.
‘좋다’고 느낀 순간을 의심하기: 왜 좋았는지 바로 말하지 말고, 10초 뒤에 다시 질문하기: 즉각적인 “좋다”는 반응은 종종 익숙함, 편안함, 혹은 분위기에 대한 자동 평가일 수 있다. 그래서 딥 리스닝에서는 그 판단을 10초만 유예하고, 방금 좋았던 이유가 멜로디인지, 톤인지, 리듬의 위치인지, 혹은 단지 스트링이 들어와서인지 다시 묻는다. 그렇게 하면 “취향”으로 뭉개졌던 요소들이 분해되고, 내가 실제로 반응한 것이 음악의 어떤 선택이었는지 드러난다. 이 습관은 감상을 줄이는 게 아니라, 감상의 근거를 더 정확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