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øren Bebe Trio
Søren Bebe (Piano), Kasper Tagel (Bass), Anders Mogensen (Drums)
Album: Echoes. Release Year: 2019 (Release date: 2019-05-10) Label: From Out Here Music
Recorded: January 2019 (The Village Recording, Copenhagen, Denmark)
음악을 듣는 일은 종종 ‘내 편’을 만드는 작업이 된다. 몇 초 안에 장르를 분류하고, 정서를 이름 붙이고, 어디에 둘지 결정한다. 그 작업이 끝나야 비로소 안심하고 듣는다. Søren Bebe Trio의 Echoes는 바로 그 습관을 건드린다. 이 앨범은 감동을 앞세우기보다, 감동을 요구하는 속도를 드러낸다. 소리가 조용해서가 아니다. 이 음반의 특이성은 조용함이 청취자의 조급함을 정확히 반사한다는 데 있다.
딥 리스닝은 흔히 집중력의 문제로 환원된다. 집중했는지, 이해했는지, 무엇을 건졌는지. Echoes는 그 프레임을 넓힌다. 이 음반이 요구하는 것은 더 높은 집중이 아니라, 결론을 서두르는 습관을 잠깐 중지하는 능력이다. 소리가 끝난 뒤에도 남는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청취는 ‘해석’이 아니라 ‘체류’의 형태로 바뀐다. 바로 그 체류가 딥 리스닝의 실질적 현장이다.
트리오의 미학은 ‘과시’가 아니라 ‘경계 관리’다
피아노 트리오는 재즈에서 가장 익숙한 형식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청취자가 예상하고 싶어지는 관성을 갖기 쉽다는 뜻이다. 멜로디가 나오고, 베이스가 지탱하고, 드럼이 스윙을 주고, 어느 순간 피아노가 불꽃을 튀긴다. 전형이 빠르게 호출되고, 그 전형이 청취를 자동 조종 모드로 밀어 넣는다. 그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안심한다. 그런데 Echoes는 그 안심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피아노는 “주인공”이 아니라 “공간의 설계자”에 가깝다. 멜로디는 지나치게 서사적이지 않게 놓이고, 페달과 잔향이 멜로디의 다음 문장처럼 길게 남는다. 베이스는 화려하게 걷기보다 바닥을 조정한다. 드럼은 리듬을 전면에 세우기보다 온도를 미세하게 올리고 내린다. 세 악기가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청취자는 “누가 무엇을 했나”보다 “무엇이 아직 말해지지 않았나”를 듣게 된다. 이 앨범은 연주자의 자기표현을 줄여서, 청취자의 과잉해석을 줄이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 절제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경계 관리다.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그러나 비어 있지도 않도록.
Echoes는 감정이 아닌, 시간에 관한 표지판이다
“에코”는 감정의 수사로 오해되기 쉽다. 회상, 그리움, 상실, 그럴듯한 단어들.. 하지만 이 앨범에서 잔향은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장치다. 소리가 끝난 뒤에도 남는 시간을 청취자에게 돌려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딥 리스닝이 시작된다. 우리가 평소에 “음악을 듣는다”고 말할 때 사실은 “음악의 사건”만 소비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잔향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 머무르며 청취자의 시간을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들을 것인가’다. 멜로디가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잔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를 하나의 문장으로 받아들이는지 여부가 청취를 갈라놓는다.
그래서 이 앨범은 장면 전환이 빠르지 않다. 즉,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급격한 전환이나 서사적 클라이맥스를 선물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 더 머무르라’고 말한다. 청취자는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야, 방금 내가 무엇을 들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음악이 아니라 청취의 시간표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청취자를 움직인다. 이때 딥 리스닝은 집중력의 고급 기술이 아니라, 지연을 견디는 기초 체력에 가깝다. 곧바로 의미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습관을 잠깐 멈추는 능력 말이다. 잔향은 지연의 형태다.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결론을 유예할 수 있는가. 그 짧은 체류가 가능해지는 순간, 딥 리스닝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
아티스트 소개
덴마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Søren Bebe가 이끄는 피아노 트리오로, 리뷰 기준 2007년부터 함께해 온 팀이다. 이 트리오는 속도나 과시로 설득하기보다 균형과 서정, 그리고 여백의 설계로 청취를 붙잡는 편이다. 실제로 Echoes를 다룬 평에서는 세 멤버가 서로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예측하며 균형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강조되었고, 멜로디 중심의 접근이 앨범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언급된다. 또한 이들의 음악은 스칸디나비안 재즈의 정서와 결이 닿아 있으며, 일부 매체는 Esbjörn Svensson(e.s.t.)나 Tord Gustavsen과 같은 계열을 참조점으로 함께 거론한다.
청취 포인트
피아노의 잔향을 멜로디처럼 들어봅니다. 멜로디는 짧게 말하고, 잔향이 오래 남아 방향을 결정합니다. 감정은 멜로디가 아니라 지속에서 완성됩니다.
드럼을 리듬이 아니라 온도로 들어봅시다. 박자가 아니라 공기의 밀도를 조정하는 손. 같은 프레이즈도 드럼의 터치에 따라 조명이 바뀐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앨범에서 드럼은 엔진이 아니라 기후입니다.
베이스를 이동이 아니라 지지로 들어봅시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바닥을 다듬고, 피아노가 멈출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줍니다. 안정은 편안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을 억제하는 긴장이 됩니다.
두 번 들어 보십시오. 청취는 표면을 확인하는 시간이고, 두 번째 청취부터 관계가 들립니다. Echoes는 한 번에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설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