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 글은 2025년에 발표된 재즈 음반들 가운데, 한 번의 인상이나 담론이 아니라 반복된 청취 이후에도 계속 다시 듣게 된 음악들을 다룬다. 순위는 없고, 장르적 대표성이나 화제성도 기준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었는가이다.
Marshall Allen’s Ghost Horizons, Live in Philadelphia, Otherly Love Records, August 2025
Marshall Allen (as, ewi), Ghost Horizons Ensemble.
이 음악은 형식보다 세계관이 먼저다. 멜로디와 리듬은 해체된 상태로 공존하며, 즉흥은 개인의 솔로가 아니라 집단적 발화에 가깝다. 소리는 정제되지 않고, 그 거칠음이 음악의 지속성을 만든다. 라이브라는 조건은 이 음반에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Live in Philadelphia는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사유의 한 단면이다. 마셜 앨런은 선율을 제시하기보다 공간을 열어 두는 방식으로 음악을 이끈다.
Trio of Bloom, Trio of Bloom, Independent, October 2025
Craig Taborn (keys), Marcus Gilmore (ds, perc), Nels Cline (g 6-str, g 12-str, lap steel, b on trks 4,10)
이 트리오는 극단적으로 절제된 밀도를 유지한다. 화성은 최소화되고, 리듬은 암시만 남긴다. 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으며, 각 악기는 서로를 밀어붙이기보다 같은 공간에 조용히 놓인다. 연주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겨 둘 것인가를 기준으로 조직된다. 음은 충분히 울리기 전에 멈추고, 다음 소리는 반드시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태도가 반복된다.
처음에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몇 차례의 반복 청취 이후, 미세한 타이밍의 변화와 음색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난다. 피아노의 한 음, 베이스의 미묘한 지연, 드럼의 간결한 응답이 서로를 자극하며 아주 느린 속도로 관계를 형성한다. Trio of Bloom은 빠른 이해나 즉각적인 인상을 거부한다. 대신 청취자가 서두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를 때에만, 음악은 비로소 자신의 형태를 드러낸다.
Joe Farnsworth, The Big Room, Smoke Sessions Records, November 2025
Joe Farnsworth (ds), Javon Jackson (ts), Mike DiRubbo (as), Cyrus Chestnut (p), David Wong (b)
이 음반은 하드밥의 언어를 숨기지 않는다. 블루스 기반의 프레이징, 명확한 폼, 솔로와 반주의 구분은 모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음악의 핵심은 스타일의 재현이나 어휘의 정확성에 있지 않다. 중심에 놓인 것은 집단의 호흡이다. 각 솔로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곡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누구도 앞서 나가지 않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다.
조 판스워스의 드러밍은 이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그는 리더로서 방향을 지시하거나 긴장을 조성하지 않는다. 대신 템포와 다이내믹을 과도하게 흔들지 않으며, 모든 연주자가 같은 시간대에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지킨다. 리듬 섹션은 추진력이 아니라 공동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그 위에서 관악과 피아노는 경쟁 없이 교차한다. The Big Room이 전통을 새롭게 들리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의 형식을 반복해서가 아니라, 전통이 본래 지니고 있던 사회적 구조-함께 연주한다는 감각-가 여전히 유효함을 조용히 증명하기 때문이다.
Ambrose Akinmusire, Honey from a winter stone, Nonesuch Records, January 2025 2025
Ambrose Akinmusire (tp), Kokayi (voc, spoken word), Sam Harris (p), Chiquitamagic (synth, sound design), Justin Brown (ds), Mivos Quartet (vn, vn, va, vc)
이 앨범에서 암브로즈 아킨무사이어는 트럼펫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악기는 여전히 그의 손에 있지만, 음악의 진행을 이끄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대신 목소리, 신시사이저, 현악 사중주가 같은 층위에서 병렬적으로 배치되며, 곡은 전통적인 재즈의 시간 구조—테마, 솔로, 클라이맥스, 해소—를 거의 호출하지 않는다.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하나의 장면 안에서 질감과 압력만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유지된다.
코카이의 스포큰 워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리듬과 음색의 일부로 기능한다. 의미는 즉각적으로 해독되지 않고, 말의 리듬과 억양이 음향적 요소로 흡수된다. 치키타매직의 신스와 사운드 디자인은 효과를 만들기보다, 공간의 밀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저음은 두껍게 깔리지 않고, 긴장은 누적되기보다 일정한 압력으로 유지된다.
이 과정에서 트럼펫은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등장한다. 아킨무사이어는 선율을 밀어붙이거나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그의 연주는 장면의 윤곽을 잠시 바꾸었다가 다시 물러서는 식으로 배치된다. 솔로는 주장이라기보다 개입에 가깝고, 음악은 언제든 그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
honey from a winter stone은 재즈 앨범이라기보다, 재즈라는 언어를 사용해 만들어진 동시대 음악의 구성물에 가깝다. 이 음반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해석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대신 청취자가 그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