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도 중요한 재즈가 많았다.
여기서 ‘중요하다’는 말은 더 이상 감탄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에 가깝다. 맥락이 분명하고, 의도가 읽히며, 첫 청취에서 음악의 위치가 정리된다. 이런 음악들은 유용하고, 종종 훌륭하다. 그러나 유용함은 오래 남는 조건이 아니다. 설명이 잘 되는 음악일수록, 청취는 빠르게 끝난다.
딥리스닝 재즈는 그래서 중요성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밀려나지 않은 음악에 관심을 두었다. 여러 앨범을 충분히 듣고 난 뒤에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음악, 의미로 기억되기보다 하나의 상태처럼 남아 있던 음악들이다. 이 질문 앞에서는 많은 앨범들이 자연스럽게 탈락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설명되는 음악은 빠르다. 첫 청취에서 자리를 확보하고, 이해의 과정이 곧 종료된다. 반면 남아 있는 음악은 느리다. 처음에는 중심이 잘 보이지 않고, 큰 인상을 남기지도 않는다. 대신 몇 번의 청취 이후에야 비로소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음악은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오히려, 계속 돌아오게 된다.
딥 리스닝 재즈가 2025년에 남긴 음악들은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맥락을 앞세우지 않으며, 침묵과 여백을 하나의 기법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로 다루는 음악들이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그리고 청취를 어떤 행위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음악은 언제나 충분히 많았다.
그러나 모든 음악이 시간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은 그해를 대표하고, 어떤 음악은 담론을 만들며, 또 어떤 음악은 장면을 장악한다. 그 모든 역할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음악은 많지 않다.
딥 리스닝 재즈 2025년 베스트 앨범 10 -(1)
Marcus Gilmore – Journey to the New: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Drummerslams Productions (May, 2025)
Marcus Gilmore (ds, perc), Morgan Guerin (ewi), David Virelles (p), Emmanuel Michael (g), Rashaan Carter (db), Burniss Travis (eb, sd)
리듬은 이 음반의 추진력이 아니라 형식의 설계도에 가깝다. 박은 분명하게 제시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세한 폴리리듬과 악기 간의 시간차가 곡의 방향을 은근히 암시한다. 드럼은 앙상블을 몰아붙이거나 긴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대신 각 연주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밀도로 놓일지를 조율하며 사고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이 구조 안에서 즉흥은 사건처럼 튀어나오지 않는다. 솔로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발화라기보다, 이미 설정된 시간 감각 위에 조심스럽게 얹힌다. 데이비드 비렐레스의 피아노는 화성을 진행시키기보다 공간을 열어 두고, 엠마누엘 마이클의 기타와 버니스 트래비스의 전기 베이스·사운드 디자인은 음색의 층위를 추가하며 리듬의 깊이를 확장한다. 모건 게린의 EWI는 선율 악기라기보다 또 하나의 시간 신호처럼 작동하며, 앙상블의 밀도를 미세하게 흔든다.
클라이맥스는 의도적으로 유예되고, 연주는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각도로 머무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 결과 이 음반은 ‘라이브의 기록’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고 방식이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문서처럼 들린다.
여러 번의 청취를 거치면서 드러나는 것은 속도나 에너지보다 구조에 대한 신뢰다. 이 음악은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리듬이 어떻게 생각을 조직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음반은 처음보다 나중에, 설명보다 반복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Dave Liebman (ss, ts), Joe Lovano (ts), George Schuller (ds), Matt Brewer (b)
이 음반은 콜트레인의 곡을 연주하지만, 그의 언어를 재현하지 않는다. 테마는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지만, 솔로는 모달 진행을 확장하거나 스케일을 누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각 프레이즈는 길이를 최소화한 채 배치되고, 음 하나가 놓이는 위치와 그 이후에 남겨지는 침묵이 즉흥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음을 더하는 선택보다 붙이지 않는 선택, 밀어붙이기보다 머무는 판단이 연주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 접근은 존 콜트레인의 후기 작품들-특히 A Love Supreme 이후에 형성된 영적 긴장-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콜트레인의 상승 곡선이나 집요한 반복을 향한 의지가 없다. 고조는 의도적으로 유예되고, 긴장은 누적되기보다 분산된 상태로 유지된다. 즉, 이 연주는 콜트레인이 도달했던 지점을 다시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그 이후에 남겨진 질문, 다시 말해 “얼마나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 위에 서 있다.
그 결과 이 음악은 감정적 해방이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연주자들은 프레이즈의 끝에서 항상 한 발 물러서며, 다음 소리가 반드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태도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이 절제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즉흥 연주를 윤리적 선택의 연속으로 재정의한다. 그래서 이 음반은 콜트레인을 기념하기보다, 그가 남겨놓은 긴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Fieldwork, Thereupon, Pi Recordings, September 2025
Steve Lehman (as), Vijay Iyer (p, elec), Tyshawn Sorey (ds)
이 음반에서 리듬은 추진력을 만들지 않는다. 박은 분절되어 있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시간을 앞으로 밀기보다 고르게 펼쳐 놓는다. 타이숀 소리의 드럼은 그루브를 형성하기보다 시간의 표면을 관리하며, 어떤 순간도 과도하게 부각되지 않도록 조율한다.
화성 역시 기능을 거부한다. 비제이 아이어의 피아노는 진행이나 해결을 제시하지 않고, 하나의 상태를 유지한 채 미세하게 이동한다. 동기는 반복되지만 결론을 향하지 않으며, 즉흥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의 지속에 가깝다. 스티브 레먼의 색소폰 솔로 또한 서사적 고조를 만들지 않고, 이미 설정된 시간과 음향 안에 머문다.
전자음향과 어쿠스틱의 결합은 대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전자음은 효과로 튀어나오지 않고, 전체 음향을 평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Thereupon은 진행하지 않는 음악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지되어 있지는 않다. 이 앨범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대신, 시간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Billy Hart Quartet. Just, ECM 2025
Billy Hart (ds), Mark Turner (ts), Ethan Iverson (p), Ben Street (b)
이 음반에서 스윙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박은 정확하지만 과시되지 않고, 리듬은 에너지를 밀어 올리기보다 집중의 균형을 유지한다. 빌리 하트의 드러밍은 시간을 끌고 가는 힘보다, 연주자들이 같은 속도로 머물 수 있게 만드는 안정 장치처럼 작동한다. 마크 터너의 테너는 프레이즈를 늘리지 않고, 에단 아이버슨의 피아노는 화성을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연주는 기능을 증명하기보다 서로의 여백을 보존한다. Just는 전통적 쿼텟 포맷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Amina Claudine Myers, Solace of the Mind, Red Hook Records, June 2025
Amina Claudine Myers (p, org, voc)
이 음반은 설명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가스펠, 블루스, AACM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만,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굳이 묻고 싶어지지 않는다. 화성은 단순화되어 있고, 반복은 고조가 아니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아미나 클로딘 마이어스의 연주는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호흡으로 같은 자리를 지키며, 음악을 따라가게 하기보다 그 안에 머물게 한다. 이 음반이 반복 청취에서 힘을 얻는 이유는, 서사보다 상태 전체가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Brandee Younger, Gadabout Season, Impulse!, July 2025
Brandee Younger (harp), Rashaan Carter (b), Allan Mednard (ds), guests
이 음반에서 하프는 색채가 아니라 구조 악기로 기능한다. 브랜디 영거는 아르페지오를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고, 화성의 골격으로 배치한다. 리듬은 미묘하게 분절되어 있으며, 곡은 고조보다 지속되는 흐름을 선택한다. 앨리스 콜트레인의 계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이 음악은 신비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음색의 변화와 반복의 밀도 조절을 통해, 하프가 현대 재즈에서 어떻게 시간을 조직하는 악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